[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박미숙 일산도서관 관장
박미숙 일산도서관 관장

[고양신문] 서울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린 날, 일가족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여기저기 ‘반지하’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과거 이야기였다. 젊은 시절 하루 종일 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살았던 이야기, 주차장 옆 창문 틈으로 매연이 들어오던 이야기, 장마 때면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 현재가 아닌 어느 시절 자기 삶의 과정 이야기였다. 

불편했다. 지금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지금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내 SNS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혹은 지금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현재 ‘가난’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가난’이라는 말은 반대말이 두 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부자’ 그리고 ‘중산층’. ‘부자’도 가난의 반대말이지만, ‘중산층’도 그에 해당한다. 게다가 ‘가난’과 ‘중산층’ 사이 간극은 너무 커서, ‘가난’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문제가 된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는 말이 늘 과거형으로 이야기되는 이유이다. 지금은 극복한 상태이니까. 

그렇다면, 가난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이 되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주말마다 줄 서서 로또를 사면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림책 『폭풍이 지나가고』(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 다봄)는 이상한 폭풍이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밖에 나갈 수 없는 가족들이 집안에서 함께 지내는 이야기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가족은 어색하고 낯설어서 서로의 신경을 긁고, 화나게 한다. 서로 듣기 좋은 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모두 혼자 있는 게 좋았다. 혼자 있으면 화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폭풍이 거세던 어느 밤, 집이 흔들리고 전기가 나갔다. 한 명 두 명 한 방에 모인 가족은 그렇게 함께 밤을 보낸다. 아침이 되니 달라졌다. 여전히 폭풍이 몰아쳤다. 그래도 괜찮았다.      

‘공감’을 넘은 ‘연대’가 필요하다. 어색하고 낯설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을 수 있고, 아직은 서로 이해가 덜 할 수 있어도 지금은 폭풍우가 치고 있다. 내가 사는 집이 튼튼하고 안전한 것이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 만든 아파트여서일 수 있고, 그로 인해 누구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내 아들 딸들은 먹고사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같은 반 친구들은 오늘 먹을 점심을 걱정하고 있을 수 있다. 내 것을 내어놓지 않는 연대는 허상이다. 살만할 때 하는 연대가 아니라, 가난하더라도, 가난해지더라도 함께하는 ‘연대’여야 한다.

지금은 폭풍우가 치는 때이기 때문이다. 집이 흔들리고 전기가 나갔다. 촛불을 켠 곳으로 모여야 할 때. 그렇게 부둥켜안고 함께 밤을 보내야 할 때이다.    

정책을 세우고, 법적 시스템에만 기대하거나, 그렇지 않은 정치적 환경을 욕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바람이 너무 거세다. 가난하지만 모여보자. 함께 견디자. 그렇게 폭풍이 지나가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햇살이 아름다운 날, 함께 문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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